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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환 특별기고] 접촉(接觸)이 되어감(有)을 조건(條件)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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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21세기 불교포럼 공동대… 작성일20-11-0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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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21세기 불교포럼 공동대표 황경환2600여 년 전 인류의 위대한 스승 고오타마 붓다께서는 접촉이라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당시의 언어(빠알리)로 파사(Phassa 接觸) 파차야(Paccaya 條件) 브하와(Bhava 有)라고 말씀하셨다.
 
  즉, 거짓말 잘하는 인간과 사귀고 접촉하면 자신도 거짓말 잘하는 존재로 되어가고, 도박을 좋아하는 인간과 사귀고 접촉하면 자신도 도박을 좋아하는 존재로 되어가고, 인간 삶의 가치인 양심을 등지고 자신의 이익과 환대와 명예에 중독된 인간과 사귀고 접촉하면 자신 역시 그러한 탐욕의 속물로 변질되어 결국 인간 삶의 가치를 상실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오타마 붓다께서는 이러한 어리석은 의식에 물든 인간들과 관계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씀 하셨다.
 
  1938년 9월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히틀러의 음흉한 거짓 평화정책에 속아 체코의 주데텐란드를 독일에 넘긴 협정문을 들고 뮌헨에서 돌아와 "유럽의 평화를 지켜냈다"고 선언했지만 이듬해 9월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체임벌린은 이에 대한 1차 책임의 정치가로 낙인 찍혀 지금까지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이때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영국의 총리에 올랐다. 그해 7월 처칠은 히틀러가 평화 협상을 제의 했지만 두번은 속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거절, 대국민담화문에서 "싸우다가 지면 다시 일어날 수 있지만 스스로 무릎을 굽힌 나라는 없어질 수밖에 없다"며 독일과의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정당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영국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 진력했다.
 
  이러한 영국 총리 처칠에게 위대한 미국의 4선 대통령 루즈벨트가 1941년 영국에 무기를 빌려 주기 시작했고, 그해 12월 7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도발함으로써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개입, 이 전쟁의 역사는 미·영의 승리로 6년 만에 끝을 보았다.
 
  그리고 훗날 처칠은 자신의 저서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국가의 안전, 동포의 생명과 자유가 걸린 문제에 위험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는 무력을 사용하는 일을 피하면 안 된다. 싸우지 않을 수밖에 없을 때는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의 '독립영웅'에서 크메르 루즈 대학살의 원인 제공자 등으로 극단의 평가를 함께 받아온 사람이 노로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다. 전말은 생략하고 그는 1950년 중반부터 미국과 중국, 베트남 사이를 오가는 비동맹 중립 외교를 지향했다. 이 시절 저우언라이(周恩來)전 중국 총리, 김일성등과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1965년 베트남 전쟁 발발 직후 대미(對美)단교를 단행한 뒤 그는 비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었다.
 
  1970년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방문하는 사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놀 장군 쿠데타로 왕위에서 쫓겨났고, 1975년 까지 중국 북한 등지에서 5년간 유랑생활을 했다. 북한의 김일성은 이때 평양으로 온 그에게 '장수궁'이라는 별장을 지어 머무르게 했으며 그와 10살이 많은 김일성과 의형제라고 할 정도로 돈독한 접촉의 관계를 유지했다.
 
  크메르루즈 공산정권이 캄보디아를 장악한 1975년 다시 프놈펜으로 돌아갔지만 사실상 연금 상태에서 3년간 국민 170만여 명이 학살과 기아, 질병 속에 숨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론놀 정권의 붕괴를 위해 크메르루즈 공산정권을 지지 한 것 대문에  대학살의 원인이 되었고 그래서 지금 캄보디아에는 킬링필드(캄보디아 자국민 대학살은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잡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대학살이 자행된 사건)라는 인간 참사의 해골 무더기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지난날 공산 정권과의 잘못된 접촉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가를 똑똑히 보여 주고 있다.
 
  지금의 중국 주석 시진핑은 당시 국가 부주석이었고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시아누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모니크 전 왕비를 위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한 후 중국과 북한이라는 관계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지난 내외신 보도에 의하면 북한은 28년 전(1992년) 제네바 핵합의부터 8번 약속을 했다.
 
  핵개발 안 한다고 4번, 몰래 핵개발하다 발각되어 6자회담에서 추궁하자 폐기하겠다고 4번 약속하고 또 어겼다. 전부가 기만전술이었고, 거짓말이었다. 그러한 기만전술에 속아 지금 북한은 연간 7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고, 이미 만들어진 핵폭탄만 하더라도 몇 십 개에 달한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핵을 포기하라는 직설적인 말 한마디 못하고 종전선언이라는 극히 추상적인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 중국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저 신뢰할 수 없는 중국을 공동체 운운하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선 발을 빼고 중국의 일대일로에 편성하겠다고 나섰다.
 
  롯데가 사드기지를 정부에 제공했다 하여 중국 롯데몰에 있는 제품들을 거리 한복판에 끄집어내어 포크레인으로 짓밟고, 2017년 7월 시진핑 주석은 문대통령의 면전에서 '북한을 혈맹'이라고 선언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이 북한 핵에 대해 한국에 협력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천명한 셈이다. 나라가 크고 인구가 많다고 중국을 대국(大國)이라고 하는가? 아니다. 그 나라 국민들 의식이 대국적이지 못하다면 그것은 절대 대국이 될 수도 없고 대국이라 할 수도 없다.
 
  그뿐인가 최근에는 비급하고 졸렬한 중국 공산당의 본색은 점점 확연해 지고 있다. WTO 사무총장은 나이지리아를 지지 했고, 한국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6·25 참전당시 한국과 미국이 함께 시련을 겪었다"고 말한 역사적 진실에 대해 이를 부정하는가 하면,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는 "북한의 남한 침략은 없고 항미 원조(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운 과정)"이라고 역사를 날조 왜곡하는 나라가 중국의 공산주의이고 위험한 민족주의다.
 
  이러한 중국을 문재인 정부는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한미동맹을 위협하는 짝사랑 친중(親中) 정책의 도박을 왜 하고 있는지 화두(話頭)다. 만약 그것이 경제적인 번영 때문이라면 그것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안보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보라, 중국의 공산주의 사상과 결탁한 김일성은 해방 이후 75년이 지난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1인 독재 국가로 전락했고,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역시 미국과 단교 후 중국 공산당과 북한의 김일성과의 의형제라는 접촉이 170만여 명의 국민이 대학살을 당하는 킬링필드의 비운을 자초하지 않았는가? 접촉(接觸)이 되어감(有)을 조건(條件) 짓는다.
사)21세기 불교포럼 공동대…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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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