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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호국 얼 서린 이견대·문화 성지 동해구 낀 역사 마을 `대본 3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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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성일20-12-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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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본3리 전경.   
[경북신문=김영식기자] 감포읍 대본(臺本)3리는 대밑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인근마을인 봉길리에 있는 문무대왕의 수중릉과 용당리에 있는 감은사지와 함께 신라 호국의 얼이 서린 유적으로 알려진 이견대가 대본3리에 있어 대밑, 혹은 대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대본3리는 또 대본 마을에서 가장 먼저 생긴 곳이라 해서 원대본이라고 불린다.

  이 마을의 가장 큰 자랑은 이견대다. 이견대는 감은사지에서 약 1㎞를 가면 바닷가로 연결된 31번 국도 옆에 자리잡고 있다. 해안가 언덕 위에 위치한 누각인 이견대에 올라서면 문무대왕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곳에서 신문왕은 부왕인 문무대왕이 용이 되어 승천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 대본항에 정박한 어선들.   

  이견대라는 이름은 주역에 나오는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臺人)'이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말은 신문왕이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용을 보고 크게 이득을 얻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본항.   

  이견대는 또 신문왕이 용에게 검은 옥대를 받아 만파식적을 만든 곳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만파식적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신문왕이 즉위해 문무왕의 능이 잘 보이는 곳에 감은사를 짓고 다음 해 감은사 앞에 산이 떠내려와 일관으로 하여금 점을 치게 하니 문무대왕과 김유신이 뜻을 합쳐 나라를 지킬 보배를 전할 징조라 해 동해안으로 나갔다. 떠내려온 산 위에 한 그루 대나무가 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이튿날부터 7일간 천지가 진동한 후 모든 것이 평온해지자 왕이 바다를 건너 산에 오르니 용이 흑옥대(黑玉帶)를 받쳐 말하기를 "두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이 대나무도 함한 뒤에야 소리가 날 수 있으며 피리로 만들어 불면 세상이 화평해지며 이는 문무왕과 김유신이 뜻을 합쳐 저로 하여금 왕께 바치게 하였습니다"고 했다. 신문왕은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고 월성원 천존고에 보관했다. 그 후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모든 병이 나아지며 장마에는 비를 그치게 하고 가뭄에는 비를 내리게 하니 모든 파랑을 그치게 한다고 해 만파식적이라고 불렀다.

                      ↑↑ 이견대.   

  지금의 이견대는 1979년 복원한 것이며 사적 제159호로 지정돼 있다.

  이견대에서 언덕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입구에 기념비가 여럿 세워져 있다. 이곳은 바로 동해구(東海口)다. 동해구는 삼국사기 문무왕조에 나와 있는 신라시대의 지명이다. 토함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대종천이 동해로 들어가는 하구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해구에 세워진 기념비들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문화 말살에 항거해 문무왕의 호국 의지를 높인 반일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 선생의 기념비가 서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우현 선생의 시 '대왕암'과 수필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전하는 문무대왕의 호국 유언이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 동해구를 연구한 학자들의 기념비.   

  우현 선생은 신라 탑파연구의 선구자였고 미술사와 미학을 처음으로 학문적으로 끌어올린 대학자였다. 그래서 우현 선생의 업적은 문무왕의 호국정신이 서린 동해구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학계의 평가가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고고학자인 고 황수영 박사와 전 경주박물관장인 고 진홍섭 박사, 향토사학자 고 윤경렬 선생이 모두 우현 선생에게 배워 경주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은 학자가 됐다.

  동해구는 문무왕 수중릉과 이견대, 감은사가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고 석굴암대불의 시선이 동해구로 향하고 있어 동해구는 신라문화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가 조선 사람들이 민족 문화의 정수이자 신라 천년의 상징인 석굴암의 존재조차 모르던 것을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일본인들이 해체하고, 복원해 재발견했다고 주장했다고 주장했지만 우현 선생은 이런 일본의 주장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반박했고 석굴암 불상의 중요성을 지적해 우리의 얼을 지켰다.

                      ↑↑ 제3발전소 정비기술부 직원들이 대본항 환경정화활동을 벌이고 있다.   

  월성원전의 자매부서는 제3발전소 정비기술부다. 김나연 차장은 "대본3리는 단순한 해안마을이 아니라 신라문화의 정수가 보존된 의미깊은 마을"이라며 "이 마을의 정신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자매부서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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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