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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생활칼럼] 날개, 육체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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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혜식 작성일21-03-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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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혜식한 장의 우표로 재탄생했다. 우표 속 여인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이 여인 옷차림이 1920년대 유행을 주도 했다고 생각하니 가히 파격적이다.
   당시 미국의 사회적 근대화 물결과 경제적 부흥은 여성들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주었다.
   이에 자신을 변화 시키고 미를 한껏 표출하는 일에 여성들은 적극 나선 듯하다. 한 장의 우표에 박제된 여인 모습은 그 시절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던 플래퍼다. 단발머리 여인이 한 손은 허리부분을 짚고 또 다른 손은 허공을 향해 치켜 올린 채, 고개는 그 손을 향해 돌렸다.

  또한 상반신을 전부 드러난 몸에 밀착된 드레스를 착용하고 무릎 아래까지 닿는 스타킹을 신고 날씬한 각선미와 몸매를 자랑한다. 흡사 현대 여성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련됐다.
   이렇듯 1920년대 미국 사회 여성들 삶과 의식에 대한 흐름을 한 장의 우표를 통하여 엿볼 수 있었다. 이로보아 우표야 말로 '시대적 화석'이라고 칭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우표를 대하노라니 어느 대학 교수가 신문에 기고한 글 내용이 갑자기 떠오른다. 미국의 1920년대 황폐했던 사회분위기가 한창 물이 오르던 그 시기로 짐작 된다. 여성의 변화한 이미지를 삽화로 그려낸 찰스 다나 깁슨이란 미국의 삽화가다.
   그는 몸에 착 붙은 옷과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마치 남자 같은 재킷을 걸친 여인의 당당한 모습을 라이프지에 그려냈다고 했다. 깁슨이 그린 여인의 모습이 언론 매체에서 인기몰이를 하였나보다. 이 여인의 모습을 일컬어 사람들은 '깁슨 걸'로 부르기도 했단다.
   이 '깁슨 걸'이 훗날 우표 속 여인의 모습인 플래퍼로 뒤 바뀌기도 했단다. 그러고 보니 이 플래퍼가 오늘날 현대 여성에게도 그 영향을 적잖이 끼쳤다면 지나친 비약飛躍일까. 요즘 젊은 여성들의 매력적인 외모는 물론 사회적으로 활동적인 모습이 플래퍼와 일견 일맥상통해서다.
   봄은 여인의 옷차림으로부터 찾아온다고 했다. 겨우 내내 칙칙한 색상의 두꺼운 외투나 패딩을 훌훌 벗었잖은가. 그리곤 마치 매미 날개처럼 하늘거리는 화사한 색상인 쉬폰 옷감의 원피스를 입고 싱그러운 젊음을 뽐내는 여성들이다.
   이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형형색색 피어나는 봄꽃보다 어여쁘다.
   어디 이 뿐이랴. 각계각층에 여풍女風이 불고 있는 사회현상도 지난날 찰스 다나 깁슨이 그린 '깁슨 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매사 자신감 넘치고 야망과 원대한 꿈을 지녔으며 첨단의 유행을 좇는 미혼인 세 딸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1920년 그 시대 플래퍼 flapper의 어느 일면은 모방하지 않아 안심이다.
   미국의 경제가 윤택해지자 여성들은 우표 속 여인처럼 짧은 단발머리와 몸에 붙는 드레스의 옷차림을 선호했다. 문제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술 ·담배를 즐겨 마시고 춤추기를 좋아하며 성도 매우 개방적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젊은 여인을 의미하는 말이 플래퍼였다는 기고 글의 언급과는 거리가 먼 딸들의 정갈한 옷매무새와 평소 성실한 삶의 태도가 마음을 놓이게 한다.
   미국의 자유분방한 여인을 상징하는 플래퍼가 우리나라에 유입 된 것에 대한 우려의 신문 기사가 이 기고 글에 인용된 게 또한 인상 깊다.
   1927년 조선일보 기사란다. "단발한 묘령의 미인을 플래퍼로 불렀다. 이 묘령의 여인이 의복, 화장 등 외화外華에만 주의 하고 인생을 살 책임을 조금도 돌아보지 아니 한다" 가 그 내용이다.
   남성권위주의가 우세하여 오로지 여인은 다소곳하고 조신하며 정숙한 현모양처여야 한다는 유교사상과 봉건주의 사상이 잔존해 있던 시절 아닌가. 그 시대의 편협적이고 완고한 시각으로 바라볼 땐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 꼴 격인 플래퍼를 선뜻 받아드리기엔 사회 정서상 거부 반응이 있었을 법하다.
   이즈막 이 신문 기사를 떠올리려니 왠지 격세지감마저 느낀다. 옷이 날개인 세상 아닌가. 뿐만 아니라 외모지상주의에 걸맞게 남녀 모두 옷차림새에 신경 쓰고 성 개방은 물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게 술도 즐기잖은가.
   이젠 옷이 사회적 경쟁력의 한 방편으로 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 예로 한 때 '한국의 샤넬'이란 명성을 얻은 '노라노 의상실'은 가수 윤복희에게 미니스커트를 입혀 그 옷의 유행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진원지이기도 하다.
   이 곳의 옷으로 1960년대를 풍미했던 배우 엄앵란을 비롯 가수 펄 시스터즈 등이 명성을 얻기도 했다.
   한편 대한민국 패션 디자이너 제 1호이기도 한 노명자씨는 육십 여 년 간 자신의 의상실인 노라노를 운영하면서 한국에서 내 노라 하는 연예인들의 미모와 명성을 빛나게 도왔다. 지난날 육영수 여사의 의상을 도맡은 곳도 이곳이다.
   노명자 씨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명품 걸친다고 멋쟁이가 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체형의 단점을 보완하고 신체적 미를 돋보이게 하는 옷을 입는 게 진정한 멋쟁이란 말이다.
   아울러 내면의 품격 있는 인품이 옷과 어우러진다면 그것이 명품 입성일 듯하다. 옷을 통하여 자신이 튀려고 한다면 그것 역시 멋이 아니란다.
   여름철 노출 심한 여성의 선정적 옷차림을 경계한 말이 아닐까. 특히 직장 여성에겐 옷이 '무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단정하고 깔끔한 옷차림은 입은 이의 기품을 높이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일 것이다.
   옷을 잘 입어서 출세한 사람도 많다는 그녀 말이 이즈막 왠지 새롭게 와 닿는다. 옷은 단순 보온 및 미적 날개로만 작용하는 게 아닌 성 싶다.
   자신의 존재감을 오롯이 표현 할 수 있기에 옷은 '신체에 입힌 무언의 언어'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올 봄, '어떤 옷차림으로 타인에게 이 언어를 아름답게 들려줄까?' 목하目下 고민 중이다.
수필가 김혜식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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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